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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衣禪師 (1786-1866)


가. 연보

나. 예술세계

다. 저술


가. 초의선사의 연보

초의선사 초의선사의 생애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자료는 신헌(申櫶)이 지은 <초의대종사탑비명 (草衣大宗師塔碑銘)> 이다. 그리고 이희풍 (李喜豊)이 지은 <초의대사탑명 (草衣大師塔銘)>이 있으며, <동사열전>, <몽연록>, <조선불교통사> 등의 자료를 통해서도 생애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스님의 생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786년(정조 10) 4월 5일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출생. 속성(俗姓)은 장(張)씨이며 본관은 흥성(興城), 자(字)는 중부(中孚), 법명은 의순(意恂), 초의는 그의 당호(堂號). 이외에 초사(草師), 해옹(海翁), 해사(海師), 해상야질인(海上野질人) 등으로 불리움.

1800년(순조 원년) 15세때 나주 운흥사(雲興寺) 벽봉 민성 (碧峰敏性)의 문하로 들어가 출가함.

1804년(순조 4) 영암 월출산(月出山)에서 바다로부터 떠오르는 달을 보고 문득 큰 깨발음을 얻음. 이후 대둔사(大芚寺)의 완호 윤우 (玩虎倫佑)에게 구족계를 받음.

1807년(순조 7) 화순 쌍봉사(雙峰寺)의 금담선사(金潭禪師) 문하에서 선수행을 전념함. 이 무렵부터 경. 율. 온 삼장에 대한 공부와 함께, 범자(梵字)를 익혀 나감. 이울러 불화(佛畵)를 즐겨 그렸다고 함.

1809년(순조 9)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다산(茶山) 정약용과 처음 만남. 다산에게서 유학(儒學) 및 시학(詩學)에 관련한 가르침을 받음.

1812년(순조 12) 다산, 윤동과 함께 월출산 백운동(白雲洞)에 들어가 놀다가 백운도(白雲圖)를 그림.

1815년(순조 15) 이삼만(李三晩) 등과 함께 전주 한벽당(寒碧堂)에서 시회(詩會)를 즐김. 처음 서울로 올라와 다산의 두 아들인 정학연, 정학유를 만나고, 홍현주(洪顯周), 신위(申緯) 등과도 교분을 맺음. 이 무렵 추사(秋史) 김정희와 그의 동생 김명희, 김상희 등과도 만난 것으로 보임. 이때 수종사(水鐘寺) 등의 사찰도 참배함.

1817년(순조 17) 서울을 떠나 경주로 내려와 불국사, 기림사 등을 참배하였으며 기림사에서는 천불(千佛)을 조성함.

1818년(순조 18) 기림사에서 조성했던 천불을 대둔사로 모셔오고 이를 천불전(千佛殿)에 봉안함.

1823년(순조 23) <대둔사지(大芚寺誌)> 간행사업에 편집자로 참여함.

1824년(순조 24) 일지암(一枝庵)을 중건함. 스님은 이후 일생을 대부분 이 곳에서 보냄.

1828년(순조 28)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다신전(茶神傳)>의 기초 자료가 된 <만보전서(萬寶全書)>의 <채다론(採茶論)>을 필사해서 돌아옴. 이를 정서해서 1830년에 펴낸 것이 현존하는 <다신전>임.

1831년(순조 31) <초의시고(草衣詩藁)> 라는 시집 한 권을 엮자, 홍석주(洪奭周), 신위(申緯)가 서문을 씀. 이듬해까지 서울에 계속 머물다가 1832년 가을 일지암으로 돌아옴. 이 무렵 청량사(淸凉寺), 용문사(龍門寺) 등을 참배함.

1833년(순조 33) 추사의 부친 유당(酉堂) 김노경(金魯敬)이 일지암으로 찾아옴.

1835년(헌종 1)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일지암으로 찾아옴. 이후 소치는 초의선사의 문하에서 시 짓는 범과 그림 그리는 법을 익힘. 스님의 권유로 훗날 추사의 제자로 들어감.

1837년(헌종 3) 일지암에서 <동다송(東茶頌)>을 편찬하여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에게 보냄.

1838년(헌종 4) 서울을 거쳐 금강산으로 여행을 감. 귀향길에 서울에 들러 홍현주의 시집에 발문(跋文)을 씀.

1840년(헌종 6) 헌종(憲宗)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선사 (大覺登階普濟尊者草衣大禪師) 라는 호를 받음.

1841년(헌종 7) 대둔사에 대광명전(大光明殿)과 보련각(寶蓮閣)을 새로 지음. 이때 제주도에 유배가 있던 추사가 '일로향실(一爐香室)' 이라는 편액을 보내옴.

1842년(헌종 8) 전주 봉서사로 가서 진묵조사(震默祖師)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음.

1847년(헌종 13)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를 찬출함.

1856년(철종 7) 추사 김정희 선생 입적. 초의스님은 훗날 <완당김공제문 (阮堂金公祭文)>이라는 글을 남김.

1860년(철종 11) 해인사 대웅전과 대장각의 중수 권수문을 지음. 이 무렵 봉은사에서 대교(大敎)를 간포하는 일과 미황사(美黃寺) 무량전을 짓는 일에 증명법사로 모셔감.

1863년(철종 14) 진도 쌍계사 대웅전의 불상 개금소(改金疏)를 지음.

1866년(고종 3) 8월 2일 입적함. 제자 선기(善機) 등이 1871년에 부도를 세웠으며,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이 1941년 비를 세움.

나. 초의선사의 예술세계

초의선사는 다방면에 걸친 예능을 떨져 보였던 예술인이었다. 그의 예술세계는 시(詩). 서(書). 화(畵) 세 분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으며, 그 대강의 특성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시(詩)

스님의 시학(詩學)은 당대의 내노라 하는 학자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던 정도의 것이었다. 스님도 여러 문사(文士)들과 어울려 수시로 시회(詩會)를 즐겼으며, 이름난 문장가들은 앞다투어 스님과 시를 교유하기를 원했다.

홍석주(洪奭周)의 "호남의 스님 초의는 학자. 선비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였는데, 그의 시문은 속성(俗性)을 벗었고, 또 정결. 간명하여 마치 당. 송시대의 그것과 같이 군더더기가 없이 맑다." 라는 표현과, 신위(申緯)의 "시란 참으로 여러운 것이다. 우리나라 스님 가운데서도 시인은 많았으나 도중에 끊기고 말더니 이제 의순의 시를 얻었도다." 하는 표현을 통해 초의선사의 시세계가 지나고 있는 탁월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서(書)

초의 스님의 제자인 범해 각안(梵海覺岸)이 지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는 초의의 범서(梵書)가 당시 모든 서예가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스님의 범자 서예가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었음을 알게 해 주는 내용이다.

또한 스님의 필적을 많이 접한 서예가들은 특히 예서가 뛰어 났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스님의 진적(眞蹟)은 대부분 그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며, 이로 인해 초의의 서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전혀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다.

화(畵)

초의 스님은 시. 서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능했으며, 특히 불화 솜씨는 근대 불화 작가들 가운데 최고로 손 꼽힐 정도이다. 현재 , 대둔사에 소장되어 있는 관음도 두 점은 스님의 대표적인 직품이며, 대광명전에 그려 놓은 단청 역시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한국 최고의 근대화가인 소치 허련이 처음 스님의 문하에서 시와 그림을 배웠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스님의 화대(畵才)는 충분히 짐작된다고 하겠다. 불화 이외의 작품으로는 <백운도(白雲圖)>와 <다산초당도 (茶山草堂圖)>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진본의 열람은 쉽지 않은 상태이다. 스님의 회화사적 위치와 화법에 대한 본격적은 연구가 시급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 초의선사의 저술

초의선사가 남긴 저술은 그 성격상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그의 뛰어난 시(詩). 문(文)들을 모은 시문집이 있으며, 차와 관련한 다서(茶書), 그리고 그의 선사상이 집약된 선서(禪書)들이 있다.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저술들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지암시고(一枝庵詩藁)

여러 문사(文士)들과 교유하며 주로 받은 시를 묶어놓은 시집. 권1, 2, 3, 4의 네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책으로 묶어진 필사본임. 필사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이 소장하고 있다가 1975년 영인본이 발간된 바 있음. 시고의 말미에 석오(石梧) 윤치영(尹致英)과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 백파거사(白坡居士) 신헌구(申獻求)가 지은 발문이 붙어 있음.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스님이 지은 소(疏), 기(記), 서(序), 발(跋), 문(文) 등과 스님의 탑비명이 함께 수록된 필사본 자료. 1890년 스님의 문인인 월여 범인 (月如梵寅)이 편집하고, 원응 계정 (圓應戒定)이 정서하여 펴냈음. 2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헌(申櫶)과 이희풍(李喜豊)이 지은 비문이 함께 들어 있어 이채로움.

문자반야집(文字般若集)

스님이 지은 서, 발, 문, 서간 등 총 11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친필 초본(草本)으로 알려져 있음. 내용은 <일지암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과 동일함. <상해거도인서 (上海居道人書)>라는 글 속에서 <동다송>의 저술 시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글귀가 보임.

초의시고(草衣詩藁)

1906년 스님의 법손인 상운 응혜 (祥雲應惠)와 법제(法弟)인 쌍수 일한 (雙修一閒)이 펴낸 목활자본임. 전 2권 2책이며, 하권 후반부에 문(文)이 실려 있음. 시편은 <일지암시고>의 내용과 동일하며, 문편은 <일지암문집>보다 훨씬 적게 실려 있음.

초의선과(草衣禪課)

<선문염송> 가운데 일부 내용을 추려내어 주석을 가한 저술. 1책, 34장(張)으로 되어 있음. 본문은 모두 55개 항목이며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음. '일지선방 중부자술 (一枝禪房 中孚子述)' 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스님의 저술임을 알 수 있음.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스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백파선사(白坡禪師)의 제자로부터 백파의 선사상을 전해 듣고, 그 내용의 잘못됨을 조목조목 논박한 저술. 19세기 선사상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저술 가운데 하나이며, 1913년 증법인 벽담(碧潭). 경연(鏡淵) 등이 인간(印刊)한 바 있음. 책머리에 원응 계정 (圓應戒定)의 서문이 있으며, 백파의 삼종선(三種禪) 구분이 옳기 않다는 내용이 주를 이룸.

동다송(東茶頌)

'한국의 다경(茶經)'으로 불리울 만큼 높은 자료적 가치를 지닌 저술. 1837년 다도(茶道)를 묻는 홍현주에게 저술에서 보낸 것임. 모두 31송으로 되어 잇으며 각 송마다 주(註)를 달아 설명하고 있음. 국산차에 대한 내용은 여섯 송에 불과하지만, 국산차의 색, 향, 맛 등이 결코 중국차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스님의 '다선일미 (茶禪一味)' 사상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이며, 초의스님의 친필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음. 태평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다예관본(茶藝館本). 이일우(李一雨) 소장의 석오 윤치영본. 그리고 법진본(法眞本). 금명본(錦溟本) 등이 현존함.

다신전(茶神傳)

차 생화에 필요한 내용을 담은 일종의 지침서. 1830년 일지암에서 <만보전서(萬寶全書)> 내용 속의 <채다론(採茶論)>을 지고 편집한 것임. 전체 22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다송>과 마찬가지로 스님의 친필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음. 다예관본, 법진본 등이 현존함.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

1847년에 저술한 것으로 1842년 전주 봉서사에 있을 때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하였음. 조선 중기의 고승인 진묵스님의 행장과 관련된 유일 자료임. 상. 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음.

대둔사지(大芚寺誌)

대둔사의 역사와 사적을 기록한 4권 1책의 사지(寺誌)로 목활자본임. 1823년에 간행되었으며 초의스님은 이 책의 편집일을 맡았음. 권 4에 들어있는 <대동선교고(大東禪敎攷)>는 정약용의 편저로 평가되며, 불교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임. 규장각과 대둔사에 소장되어 있음.


 - 자료출처 : 초의선사(도서출판 일)

 - 자료작성 : 1998. 10.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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