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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四佳) 서거정 (1420-1488)


▣ 사가선생연보

서거정(1420-1488)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四佳)라 했다. 증조부는 호조전서 義이고, 아버지는 목사 彌性이며, 어머니는 權近의 딸이다. 최항(崔恒)이 그의 자형이며, 조수(趙須), 유방선(柳方善) 등에게 글을 배웠다.

그 학문이 매우 넓어서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성명, 풍수에 까지 관통하였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에 능하였다.

1438년(세종 20) 생원, 진시, 양시에 합격하였고, 144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 박사, 경연사경이 되었고, 1447년 부수찬으로 승진하였으며, 1451년 (문종 1) 부교리에 올랐다.

1455년 (세조 원년) 世子右弼善이 되고, 1456년 집현전이 혁파되자 成均司藝로 옮겼다. 일찍이 조맹부의 「적벽부」 글자를 모아서 칠언절구 16수를 지었는데 매우 청려하여 세조가 이를 보고 감탄하였다.

1457년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우사간 지제교에 초수되었다. 1458년 庭試에서 우등하여 공조참의 지제교에 올랐다가 곧이어 예조참의로 옮겼다. 세조의 명으로 『五行總括』을 지었다.

1460년 이조참의로 옮기고, 사은사로서 중국에 갔을 때 통주관에서 안남사신을 만나 詩才를 겨루어 탄복을 받았으며 요동人 丘製는 그의 초고를 보고 감탄하였다.

1465년 예문관 제학, 중추부 동지사를 거쳐 다음해 拔英試에 합격하여 예조참판이 되고 이어 登俊試에 3등으로 합격하여 행동지중추부사에 특가되었으며, 『경국대전』찬수에 참가하였다.

1467년 형조판서로서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 지사를 겸하여 文衡을 관장하였으며 국가의 典冊과 試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서거정의 화려한 공직생활은 이로부터 꽃을 피운다. 곧 조선시대의 문형이란 본인과 집안의 특별한 영예가 되는데,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이 직책에 있음으로 해서 한 시대의 문권과 권력의 헤게모니를 잡게 되기 때문이다.

1470년 (성종 1) 좌참찬이 되었고, 1471년 달성군에 봉해졌다.

1476년 원접사가 되어 중국사신을 맞이하였는데, 수창을 잘하여 기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 해 우찬성에 오르고 『삼국사절요』를 공편하였으며, 1477년 달성군에 다시 봉해지고 도총관을 겸하였다. 다음 해 대제학을 겸하였고 곧이어 한성무 관윤에 제수되었다. 이 해 『동문선』 130권을 신찬하였다.

1479년 이조판서가 되어 송나라 제도에 의거하여 문과의 관시, 한성시, 향시에서 일곱 번 합격한 자를 서용하는 법을 세웠다. 1480년 『역대연표』를 찬진하였다.

1481년 『신증동국여지승람』 50권을 찬진하고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1483년 좌찬성에 제수되었다. 1485년 世子貳師를 겸하였으며, 이 해 『동국통감』 57권을 완성하여 바쳤다.

1486년 『필원잡기』를 저술하여 사관의 결락을 보충하였다.

1488년 (성종 19) 가을에 그의 문집 『사가집』이 갑진 주자본으로 처음 간행되었는데, 임원준은 그 머리말에서 이 책에 실린 작품 분량이 "시집이 오십여 권에 만여 수이고, 문집이 이십여 권에 수백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 한 책밖에 전하지 않고 있다.


 - 자료출처 : 四佳 徐居正 詩選(평민사)

 - 자료작성 : 1998. 12.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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