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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글을 읽고 (070209)


茶한잔

지난 일요일 집에서 불교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사성제'에 관한 의미가 대체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통상 사성제는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하는데 괴로움(苦), 괴로움의 집(苦集), 괴로움의 멸(苦滅),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도(苦滅道)의 네 가지를 말하며 부처님이 깨달은 후에 최초로 설하신 '거룩한 진리(法)'이고 열반하시기 전까지 설하신 모든 말씀은 이 진리로 집약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시 된다.

사성제(四聖諦)

첫번째 진리는 고(苦)가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관찰이다. 고는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싫어하는 것과 부딪침, 좋아하는 것과 헤어짐, 욕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등에 존재한다. 즉 오온(五蘊) 色, 受, 想, 行, 識 이라는 '집착의 덩어리'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존재가 갖고 있는 모든 고통스런 성질을, 그 존재가 집착하는 사물 전체와 연결시켜 결국에는 거듭되는 전생을 유도한다는 이론적 결론을 내고있다.

두번째 진리는 고(苦)의 원인에 대한 것이다. 즉,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으로 갈애(渴愛)를 들고 있으며 그것을 욕구(탄하)라고 부른다. 갈애(渴愛)로는 ⑴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애, ⑵ 존재에 대한 갈애, ⑶ 존재를 끝내고 싶어하는 갈애 등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 첫번째 갈애는 그 자체로 분명하다. 욕망은 무제한 충족시킬 수는 없고 욕망은 고통스런 존재와 곧바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갈애는 존재하고 싶은(살고 싶은) 갈애를 말한다. 세번째 것은 텅빈 것에 대한(죽고 싶은) 갈애로 목표가 두번째 갈애의 정반대이지만 역시 갈애이다. 비록 텅빈 것을 갈애하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된다.

세번째 진리는 고(苦)의 소멸에 관련된 것인데 이것은 전생을 이어져 오는 갈애를 소멸시키고, 인간이 무한하게 추구하는 '집착 덩어리'인 즐거움과 열정에 대한 갈애를 없애므로써 무명에서 연기한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자 함니다. 즉 괴로움의 멸이라는 이 명백한 사실을 깨우쳐 주고, 동시에 괴로움이 사라진 그러한 종교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네번째 진리는 고(苦)를 소멸시켜 도(道)에 이르는 길을 말해 준다. 고를 완전히 소멸시켜 도에 이르려면 다음 여덟 가지 길(八正道)을 실천해야 한다. ⑴ 정견(正見, 바르게 바르게 보는 것, 관찰하는 것), ⑵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는 것, 즉 생각할 바(可念)와 생각 안할바(不可念)를 마음에 잘 분간하는 것), ⑶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는 것), ⑷ 정업(正業, 몸을 바르게 행동하는 것), ⑸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는 것), ⑹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노력하여 마음을 닦는 것), ⑺ 정념(正念, 수행목적을 잊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두는 것 ), ⑻ 정정(正定,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바르게 명상하는 것) 인데 불교의 교리는 이 네 가지 진리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특히 고(苦)의 성질을 설파한 첫번째 진리는 불교의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이 진리는 자연계에 관한 우주관이기도 하고 존재에 대한 생태학 또는 심리학이다.

고(苦)를 소멸시켜 도(道)에 이르게 한다는 여덟가지의 길(八正道) 중에 한가지라도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위빠사나에서는 정견(正見)만 잘 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 항상 벽에 부딪치고 쉽게 말이 나오지 못한다.


 - 작성일 : 2007.02.08일

 - 퇴근하고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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