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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고구마(051030)


청개구리 '아버지 이번 고구마를 캐서 대구 내려가실 때 두박스 가지고 가세요.'
'두박스~, 들고 갈수 있겠나.' 아버지가 집에 오신날 퇴근하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언뜻 물어본 대답을 나는 선뜻 이해 할 수 없었다.

오늘 대구 집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하여 차에 타신 아버지의 옆 얼굴에 핀 검은 버섯들을 보면서 왜 아버지가 한박스도 힘들어 하신 이유를 알았다. 일년에 몇차례 뵙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아직도 젊어서 활동하시던 건장한 아버지로 여겨졌는데 바로 옆에서 본 보습에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지금껏 가졌던 느낌의 차이를 발견하고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새삼 꺼져가는 촛불을 보는 듯이 애초롭다.

아! 이제 10년은 살아계실 수 있을 까!

불과 한 두해 전만 하더라도 아직 머리 숱이 검다고 자랑하시더니 이제는 흰머리에 물을 들이신다는 말씀과 그 많던 머리 숱은 어느새 듬성듬성하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도다운 효도를 못해드리고 이제 73세의 인생을 넘어가시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우울하다.

'아버지 아세요.', 저가 시골에서 대구로 전학을 올 때가 중학교 2학년어었어요. 아버지는 막내를 대구 대명동 자취집에 대려다 주시면서 못 미더웠던지 버스에 올라타는 나를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시며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면서 눈물을 보이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언젠가 언뜻 지나가는 말로 그때의 심정을 얘기하셨지요. 아버지, 그러나 그 자식은 그런 말을 지금 하고 싶지만 과거의 회상을 떠오르게 하실까 입을 닫습니다.

두분이 사시기가 가끔 무섭다고 하실정도로 구룡포에서도 외 떨어진 해안가 무선국에서 근무하실때나 그 후에 다시 포항위에 있는 강구 무선국에 계실때도 자식 대학 등록금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때어 놓으시고 생활하셨던 우리 아버지.

80년 초반 대학 1학년때 며칠간 전방에 있는 군대에 교육을 가기 위하여 단체로 맞은 장티푸스주사의 부작용으로 쇼크를 받아 10일간 입원을 하실때 꼬박 병원에 계시면서 한참 큰 놈의 어리광을 웃어면서 받아주시고 수발을 하셨던 그 아버지가 이제 지는 해와 같다니... 자꾸 과거가 떠오르네요.

자식들을 너무나도 끔찍히 위하셨던 두 분, 항상 자식의 생각을 따라 주시거나 못마땅 하더라도 기다려 주셨던 그 분을 보내기 위하여 수원역으로 가면서 세삼 세월의 지나감을 느낍니다.

180의 큰키에 동네에서 힘깨나 쓰시고, 생활에 보탬을 위하여 그 추운 겨울바다에 들어가서 미역을 채취하신 그렇게 정정하시던 아버지가 이제는 라면 한 박스로 못되는 고구마를 겨우들어 옮기실때 이 자식은 새삼 과거의 지나간 애달픈 시간을 보게 됩니다.

지금 아무리 정정하셔도 10 수년내에 차차 꺼지실 촛불과 같은 부모님을 좀 더 찾아 뵙고 맛있는 것, 편한 것을 찾아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계실때 못다한 효도를 해 드려야 하는데... 정말 후회없는 그런 자식으로 남고 싶습니다.

아버지! 떠나신 역에서 돌아오는 내내 우울하고 마음이 아리하고,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 생전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까, 이 자식은 곰곰히 마음을 되새깁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길 축원드립니다.


 - 작성일 : 2005.10.30(日)

 - 주말농장에 고구마 캐러오신 아버지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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