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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글(050625)


어떤 일을 하고서 괜히 부산을 떨었다는 생각이 들 때거나 뭔가 중요하고 지혜롭게 판단할 필요가 있을 때 나는 읽은지 10년도 넘었지만 생생하게 그때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거의 95% 이상은 이와같은 유사한 반응에 같은 행동을 할 것이 뻔하겠지만 정말 연륜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두고두고 머리속에서 떠올리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책임도 지지 못할 이방인이 우연히 방문한 미지의 산악부족인 라후족들과 6개월 정도 머무르면서 대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400여명이 되는 부족을 결과론적으로 멸족에 이르도록 했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내 의식 속에 뚜렸이 남아 대목대목 마다 되새김 되곤 한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악의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그 부족이 처한 핍박과 수난을 벗나게 해주려는 순수한 의도가 그 지역의 특성과 역학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 개입함으로서 나타난 엄청난 결과를 볼 때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는 통용되는 것도 다른 조직이나 환경에서는 통용이 안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되세기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때 책에서 언급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80년대 말 UN 농업고문관으로 필리핀에 거주한 한국인이 태국 북부의 리후, 아카, 리수라는 고산족이 살고있는 트라이엥글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들 중 400여명으로 구성된 리후족 부족에서 몇개월을 머물면서 겪게된 온갖 일들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 자신이 행한 일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그곳에 머물면서 생김새나 언어, 풍습, 기타 여러 정황으로 보아 1,300여년전 당나라에 패한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가면서 일부는 남쪽 변방으로 보내져 살아온 후예가 아닌가 하면서 3개월을 보낸 어느날 여느때와 달리 부족민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면서 서둘러 마을 뒷산에 있는 동굴로 피신하는 도중 주위에서 총소리가 울리고 겨우 동굴로 피신온 겁먹은 부족민은 미쳐 도망가지 못한 일부 부족민이 적에게 잡혀 매를 맞으면서 고초를 겪다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아편을 빼앗기고는 나중에 처형되는 장면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

죽은 사람 중에 족장의 아내도 끼여져 있어서 마을은 온통 침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족장은 지금의 처한 현실보다는 쿤사조직이 미얀마 정부군과 싸움에서 밀리면서 옛날과 같이 아편을 수확하는 시기에는 그래도 다른 소규모 군사조직이 아편을 강탈하지 못하게 방어를 해주었는데 최근에 손을 쓰지 못하게 되자 일부 이런 군사조직이 자주 들어닥쳐서 사람을 죽이고 아편을 빼앗는 일이 늘어난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저자는 앞으로 이 부족이 생존하려면 스스로 방어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군대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젊은 축에 들어가는 동네사람 50명을 모아서 1소대, 2소대, 예비소대를 구성하여 우선 목총으로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매일 두사람을 교대로 차출하여 산 꼭대기 망루에 보초를 서게해 지난번에 온 푸렁군이 다시 쳐들어오면 깃발을 흔들도록 하였다.

목총으로 훈련을 하였지만 초기에는 단순하고 오합지졸이던 사람들이 사냥의 본능이 있어서 인지 보름이 지나자 제법 전열이 정비되었고 전투에 대비하여 은신처를 만들고, 참호도 산 능성의 중요 목마다 배치해 두었다. 그리고 총과 총알을 구입하기 위하여 날을 잡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달러와 족장이 확보한 아편을 가지고 20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쿤사지역을 들어갔다.

처음에는 쿤사가 후방 부족민에게 총을 주어 부족이 무력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다에 따라 반대를 하다가 제식훈련을 비롯하여 각개전투 총검술 등의 시범을 해보이자 쿤사가 약간의 관심을 표시하는 틈을 이용하여 저자는 이 부족이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게 함으로서 후방에서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는 푸렁군을 일소하는데 쿤사 군대가 해야할 일을 대신하는 역할도 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설득하여 AK소총 수십정과 탄알을 받아냈다.

이제 총이 확보되었으니 아직까지 해 보지 못한 실전훈련을 하게 됨에 따라 그동안 겁많고 뺏기기만 하던 부족병사들이 오히려 푸렁군이 마을로 어서 나타나기 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오래전에 읽은 '완장'이라는 소설처럼 단순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반복훈련은 집중력을 대단히 높이는 결과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병사들도 불과 한여달 만에 전에와는 사뭇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산꼭대기에서 깃발이 흔들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배운대로 여자와 노약자는 마을 뒷편에 있는 동굴을 피신하고 부족병사들은 소대별로 맡은 지역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 한 20명 정도의 푸렁군이 아무런 경계도 없이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좁은 골짜기에 나타나자 총을 쏘기 적당한 사거리까지 오길 기다려 산 양쪽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한 결과 급하게 도망친 2명을 제외하고는 불과 한시간도 안되어 모두 사살되었다.

이렇게 되자 부족병사는 더욱 사기가 올랐고, 전투 중에 손실된 전력을 만회하고 앞으로 닥칠 대규모 전투에 대비하기 위하여 그동안 있었던 전과를 쿤사에게 알리고 더 많은 총과 수류탄과 폭발장비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쿤사도 자신의 병사를 리후족 병사와 같이 잘 훈련을 시킬려고 저자가 하루빨리 와서 훈련을 시켜주길 기다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 이 부족에서 빠지다면 당장 위태로와 질 것 같아서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고, 다시 있지 모를 전투에 대비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달 쯤지나자 다시 산꼭대기 망루에 깃발이 흔들리고 마을은 온통 전쟁준비에 돌입하게 되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옛날과 달리 충분히 경계를 하면서 쳐들어 왔다. 최대한 200명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더 많은 푸렁군이 오는 것을 보고 2부능선에서 방어를 치고 모자라 다시 8부 능선의 참호까지 후퇴하면서 최대한 가까이 근접을 했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치열한 전투를 하였다. 나중에 일부 도망가는 길목에 매복조를 두고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절벽에 설치하여 터뜨리게 한 결과 5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고 부족병사는 족장을 비롯하여 3명이 죽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선에서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

소규모 부족단위에서 족장의 역할은 절대적인데 족장이 죽었으니 부족민들은 의지할 것이라곤 자신들이게 갑자기 나타난 저자 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족의 족장이 되어 달라는 간청으로 어쩔 수 없이 족장이 되었고, 이번 전투에 죽은 족장과 부족민들에 정중히 장사를 지내고 마을 어귀에 묻어 주었으며, 특별히 족장의 무덤은 봉분을 더 크게 하였다. 졸지에 족장이 되어 며칠을 혼란스럽게 보내고 그동안 전에 마을에 살면서 족장의 지시에 따라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갑자기 아침에 아내가 보이지 않자 온 마을을 뒤지게 한 결과 아내는 절벽에 스스로 떨어져 죽었던 것이다. 몇달에 걸쳐서 자신의 부모가 모두 죽었고 또 그 부족에는 실로 엄청난 일이 한꺼번에 벌어진 것을 아내가 견디지 못한 때문이 아니었겠나고 생각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신도 더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 염치가 없지만 새벽에 부족민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하산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내 몰라라 하고 내려온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2년뒤 자비로 다시 그것을 방문하게 되었다.

직접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 겸양쩍고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타이족 상점에 노인을 만나 그쪽 사정을 듣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 마을이 절단났다는 것이다. 전에는 산족마을 중에서 밥술이나 먹고 사는 마을이었는데 2년전 한국에서 온 청년이 마을에 들어와서 몇개월 살았는데 푸렁군에게 시달림을 받는다고 온 마을 장정들을 무장시켰으며, 큰 전투에서 푸렁군 500명을 전멸시킬 때만 해도 모두들 마을이 잘되거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 뒤 갑자기 한국에서 온 청년이 온데간데 없이 마을을 떠나고 난 뒤 리후족 마을은 다시 옛날로 돌아갔는데 그런데 잘 훈련되어 있는 마을 군인들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쿤사의 군대가 미얀마 정부군에게 밀리고 사상자들이 속출하자 보충병으로 필요했는데 그런데 잘 훈련된 리후족 병사들은 쿤사에겐 가뭄에 단비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어느날 쿤사가 와서 총을 쏠 줄 아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다가 전쟁에 투입하였는데 대부분 미얀마 정글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것이다. 남은 마을사람들은 노인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전부라서 힘들게 살다가 몰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몇달전까지 간혹 여자들이 재배한 농장물을 가져와서 근근히 끼니를 때웠는데 최근에 몇달간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난 뒤 참으로 오랫동안 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중요한 판단을 하게되는 고비마다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그러다가 정말 잘 아는 지인이나 후배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내가 한 일과 빗대어 야야기 하곤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사람은 지식보다는 지혜에 눈을 뜨야 한다'고 책에서 근성으로 읽었는데 이때 정말 지혜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뜻에 대한 공감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글로 정리를 해 두어야지 하고 미루고 있다가 이번 주말을 빌어 머리에 떠돌던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보았다.


 - 작성일 : 2005.06.25(土)

 - 육이오를 생각하면서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둔 것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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