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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이런 슬픈 멋을 아는가! (030104)


이덕무! 스스로도 간서치(看書痴)라 할 정도로 아들 이광규의 '선친께서 남긴 행적'에서 '어렸을 때부터 문을 닫고 들어앉아 글을 읽으면 사람들이 그 얼굴을 잊을 정도로 였다' 라고 적고 있는 청장관(靑莊館) 이덕무.

작년 봄부터 4개월간 집중적으로 영정조 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들이 걸어온 삶의 흔적을 책으로 대하면서 그 동안 흔틀어진 내 자신의 나침판과 균형적인 의식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이덕무의 삶이 절절히 나의 가슴에 와 닿았다. 서얼로 태어나 아무리 책에 미쳐서 읽고 세상에 뜻을 펴고자 해도 그의 벼슬의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고, 딱히 살아갈 방도도 없이 그저 처절한 가난을 숙명으로 살아온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흔적을 그의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영양실조 끝에 폐병을 걸렸는데 의원의 처방을 받고서도 약을 지을 수 없었다. 어쩌다 어렵게 약을 마련하면 손수 약을 달이며 약탕관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졸아드는 약물소리를 제 애간장이 녹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고,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지은 글에서 '지금도 슬픈 생각이 들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은은하게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황홀하게 사방을 둘러보아도 기침하시는 어머니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이에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라고 쓰고 있다.

또 고생이 끝남도 없이 가난한 집에 시집간 누이가 역시 영양실조로 폐병이 깊어져 집에 데려와 구완하다가 또 그렇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피눈물로 누이의 제문을 이렇게 쓰고 있다.

6월 3일, 폭우가 쏟아지며 캄캄해졌다. 전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온 식구가 모두 밥을 굶었다. 네가 이를 알고는 기쁘지 않아 상을 찡그리더니, 이 때문에 병이 더 극심해졌다. 아이를 집에 돌려 보내자 갑자기 네가 숨을 거두었다.

늙은 어버이는 흐느껴 울며 부자와 형제가 이에 세 번 곡하였다. 천하에 지극히 애통한 소리다. 너는 이제 영원히 잠들었으니 이를 듣는가 듣지 못하는가?

평시에는 남들과 말할 적에 형제가 몇이냐고 물으면 아무개와 아무개 넷이 동기라고 하였더니, 이제부터는 남들이 물으면 넷이라 할 수가 없겠구나. 몸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여 육골을 긁어내는 것만 같구나. 형은 아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우가 형을 묻는 것을 애통해하는 구나. 이치가 분명하여 차례가 있어 어길 수 없건만, 네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보게 되니 나는 원통하고 참담할 뿐이로구나, 너는 비록 편하겠으나 내 죽으면 누가 울러주랴! 어두운 흙구덩이에 차마 어찌 옥 같은 너를 묻어랴? 아, 슬프도다!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를 아끼는 벗들의 추천으로 정조가 학술 진흥을 내세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세운 규장각에 초대 검서관(檢書官)으로 임명된 후 입에 풀칠이라도 면하게 된다. 그는 많은 호(號)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순수한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영처, 매미와 귤의 깨끗함을 좋아하여 선귤당(蟬橘堂), 순수하게 살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신천옹이라 불리는 새를 뜻하는 청장(靑莊)이라고 짓기도 했다.

눈병이 날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 것 못지 않게 그가 남긴 많은 저술은 더더욱 방대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은 '이목구심서', 선비의 바른 몸가짐을 격언으로 적인 '사소절(士小節)', 고금의 명인들의 시화를 수록한 '청비록(淸脾錄), 규장각에서 있어면서 '국조보감', '무예도보통지', '여지지' 등 모두 그의 치밀한 필치가 배어 있는 책이다.

그중에서 슬프면서도 잔잔한 감동의 글을 두편 적어본다.


'논어 병풍과 한서 이불 - 耳目口心書中'

지난 경진년과 신사년 겨울의 일이다. 내가 거쳐하던 작은 띳집이 몹시 추웠다. 입김을 불면 성에가 되곤 해, 이불깃에서 버석버석하는 소리가 났다. 내 게으른 성품으로도 한밤중에 일어나 창졸간에 '한서(漢書)' 한 질을 가지고 이불 위에 죽 늘어놓아, 조금이나마 추위의 위세를 누그러뜨렸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거의 얼어죽은 진사도(陳師道)의 귀신이 될 뻔하였다.

간밤에도 집 서북편 모서리로 매서운 바람이 쏘듯이 들어와 등불이 몹시 다급하게 흔들렸다. 한동안 생각하다가 '논어(論語)' 한 권을 뽑아 세워 바람을 막고는 혼자서 그 경제(經濟)의 수단을 뽐내었다.

옛사람이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든 것을 기이함을 좋아함이라 하겠거니와, 또 금으로 새와 짐승의 상서로운 상징을 새겨 병풍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워 족히 부러워할 것이 못 된다.

어찌 내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 창졸간에 한 것임에도 반드시 경사(經史)를 가지고 한 것만 같겠는가? 또한 한나라 왕장(王章)이 쇠덕석을 덮고 누웠던 것이나, 두보가 말 안장을 깔고 잔 것 보다야 낫다 할 것이다.

을유년 겨울 11월 28일에 적다.


'낙서 이서구에게 보내는 편지 - 與李洛瑞書九書'

내 집에 좋은 물건이라고는 '맹자' 일곱 책분이오. 나는 오랫동안 굶주리다 못해 기어이 그걸 돈 이백 닢에 팔았소이다 그려.

그래 그걸로 밥을 잘 먹고 희희낙낙하여 영재(유득공)에게 가서는 크게 자랑했다오. 그런데 영재 역시 굶주린지 이미 오래된 터라 내 말을 듣더니만 곧바로 '좌씨전'을 팔아서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 내게 마시라 하질 않겠소.

이는 맹자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래서 우리는 맹씨와 좌씨를 천천만만 번이나 칭송했는데 만약 우리들이 한 해가 끝나도록 이 두책을 읽기만 했다면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소.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다 요행을 바라는 술책일 뿐이므로 당장에 팔아 한때의 취함과 배부름을 꾀하는 게 더 진실되고 꾸밈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소.

슬픕니다! 슬픕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 작성일 : 2003.01.04일

 -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읽고, 미루다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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