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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전(孝田) 심노숭(沈魯崇)의 글을 읽고 (020216)


년전에 심노숭 시문(詩文)을 한글로 엮은 책을 읽고 마음속에 깊은 정감을 가지고 오랜만에 다시 찬찬이 읽었다. 마치 청나라때 심복(沈復)이 지은 부생육기(浮生六記)의 아내 운(芸)을 대하는 듯한 애틋한 글을 다시 접하는 것 같이 오랫동안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중국의 근대 문호 임어당(林語堂)은 '부생육기'를 '중국문학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글이다.' 라고 하는 극찬을 했는데 정작 우리는 선조(先祖)들이 이런 아름답고 휼륭한 글을 정작 모르고 있구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글을 읽어면 읽을수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또한 당대의 글을 짓는 문사(文士)를 비판한 문예론에서는 중국의 고문(古文)을 비루하게 인용하여 자신들의 학문의 깊이를 과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런 글은 단지 한 줄의 활기도 없고, 진의(眞意)도 없는 거짓 문장(文章)이니 문사(文士)라면 잡풀을 뽑듯이 버리라는 글에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떠 올랐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가 도연명의 시(詩)를 그토록 높이 치켜세우는 이유는 끼워 맞추기 식의 옛 문장(文章)을 인용하지 않고 어려운 생활고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품을 거슬리지 않겠다는 솔직 담백한 진솔한 마음이 그 속에 담아 있기 때문인데 나는 효전(孝田)의 글에는 이런 마음을 보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름다운 글을 알릴 수 있을까? 외국것에 대한 것은 그렇게 관대하고 좋은 평을 하는데 정작 우리것에 대한 것은 왜 그렇게 무심하고 천시를 하는지 연암이 그렇고, 허균이 그렇고 추사 등의 일생이 그랬다. 한 시대를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적인 뛰어난 인물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키워지기는 커넝 싹도 피우지 못하고 찍혀지는 그런 역사이고 보면 이런 아름다운 글이 남아 읽을 수 있는 것 만으로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내를 잃고 너무 슬퍼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까닭에 아내를 잃은 자는 풍속을 두려워하여 그 슬픔을 숨긴다.'라고 까지 한 효전은 아내와 어린 딸의 잇따른 죽음을 절절히 담아 26편의 시(詩)와 23편의 문(文)이라는 도망문(悼亡文)을 남겼는데 어디에 내놓아도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글이다.

이 시문(詩文)이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문예론에 말한 것과 같이 전대(前代)의 다분히 형식적인 상용 문체를 벗어나 자신의 감성을 꾸밈없고 감성이 풍부한 다양한 문체로 남겼다는 점인데 이 중 몇 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심노숭이 계축년 4월초3일에 분암(墳菴)에서 글을 지었다는 신산종수기(新山種樹記)는 바로 전(前) 해 31세의 동갑나기 아내를 사별하고 나서 이듬해 한식날 파주 선산에 나무를 심게 된 내력을 기술한 것이다.

아내가 죽기전 남산 본가에서 쇄락해가는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다른 집들은 다들 뜰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데 우리 집도 좀 그렇게 하자는 아내의 이야기에 조만간 파주로 낙향하여 아담한 집을 짓고 그곳에 정원을 가꾸자는 내용과 실제 집을 지으면서 새 보금자를 함께 설계하는 다정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같이 지은 집이 거의 다 지으질 무렵 아내는 병이들어, 결국 이사하던날 죽은 아내의 시신을 옮겨와야 하는 애틋한 심정에서

"지난해 고향 파주(坡州)에 조그만 집을 새로 지었다. 아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제 당신 뜻을 이룬 건가요?' 라 하고,

정원과 담장을 배열하고 창문의 위치를 잡는 것을 아내와 상의하여 하였다.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꽃과 나무를 심으려고 했는데 일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병들었는데 처가에 있는 아내의 병이 조금 차도가 있으면 다시 파주로 돌아와 일을 도왔다. 일이 끝날 무렵 아내는 병이 더욱 위독해져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내가 말하기를

'파주 집 곁이 저를 묻어 주세요.' 라고 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 파주 집으로 오던 날 아내는 관(琯)에 실린 채 왔다. 아내의 무덤자리를 정하였는데 집에서 백보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잡았다. 그래서 기거하고 음식을 먹을 때 아내의 넋이 통하는 듯 했다."라고 적고 있다.

또 남산에서 아내와 약속한 새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자는 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아내의 무덤 주위에 나무 심기를 집착하는데 '아! 이것은 참으로 오래된 계획이었다.'로 애절히 적고 있다.

"아내의 무덤 자리는 조부모 아래에 썼는데 나무를 더 심지 않아도 될만 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무덤 주변에 넝쿨이 뻩치고,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막기 위해 가시나무를 베어내고 소나무, 잣나무, 삼나무 등 만을 남기고 나니 조금 성기었다. 이에 나무를 더 심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한식날 삼나무 치목 30그루를 심었다. 지금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봄, 가을로 나무 심기를 의식으로 삼을 것이다.

아! 이것은 참으로 오래된 계획이었다. 남원을 버리고 파주로 가겠다던 그 계획을 이제야 이루려고 했는데 아내와는 하루도 함께 못하였으니 뒤에 죽는 것이 더욱 슬픔만을 더 하니 구구히 삶을 도모하여 스스로 오랜 계획을 세우는 것 또한 미혹된 짓이 아닌가!" 라고 하였고,

"남은 생애를 생각해 보니 불과 수삼십 년이요, 죽으면 천 년은 무궁한데 살아서는 파주의 집에 같이 살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하나하나 가려심은 산림에 오래오래 같이 뭍히게 되니 나무 심는 즐거움이 그지 없다." 라는 글에서 잔잔한 부부애를 읽을 수 있다.

동원(東園) 칠언 시(詩)에서는 아내가 죽은 이듬해 봄. 서울 본가에 잠시 들리러 왔다가 제수씨가 쑥으로 찬을 내어 왔는데 이를 보면서 평소 쑥 음식을 잘 만들었던 아내가 죽기 전(前) 앞으로 쑥을 보면 자기를 생각해 달라는 사연을 시로 남기고 있다.

"동쪽 뜰에 눈 녹아 시냇물 흐르는데, 봄 그늘 땅에 드리우고 구름은 교태롭네.
중문은 적막하고 후당은 닫혀 있고, 주렴에는 거미줄과 먼지 쌓였는데.
담장 동쪽 오랜 괴목 아래, 실같이 가녀린 푸른 쑥 돋아 났네.

그대 있을 적엔 매년 쑥으로 음식 만들어, 시누동서 다같이 모여 기쁨과 웃음이 가득했지.

치마 걷어 올려 허리에 끈으로 졸라매고, 손에는 호미를 쥐었네. 모친은 그 모습보면서 적다 많다 평하시고, 그대는 쑥을 뜯고 딸아이는 광주리 들고 다녔지.

순식간에 국이 되고 밥도 뜸이 다 들자, 북시에서 장(醬)을 사고 서시에서 기름을 사왔네. 문 앞 생선장수 있어 한 꿰미 사니, 생선이며 봄 음식이 상에 가득하네.

밥상 앞에 나서니 응당 술 생각나, 그대는 패물을 어린 계집종에게 주며 술사오라 했네.

술 오길 기다리며 애기 도란도란, 골목 어귀 신씨 아낙 집에 새로 술을 걸렀다지. 밥상에 둘러앉아 웃음소리 시끌하고, 나는 시 한수 읊조리니 온갖 시름 다 잊히네.

지난해 나는 관서지역으로 나가, 삼개월간 강산을 구경하며 천리를 노닐었지.
돌아와 보니 그대는 병들었고 쑥 또한 시들어, 그대 울면서 하는 말 '왜 이렇게 늦었는지요?'.

무릇 만물은 흐르는 물과 같아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우리내 인생살이 하루살이 같은 것. 내 죽은 이듬해 다시 쑥이 나올 때, 그 쑥 보면 제 생각 해달라고 했네.

오늘 우연히 제수 씨가 차려 준 밥상 위에, 갓난 쑥 보자 그대 생각 목이 메이고.
그때 나를 위해 쑥 캐주던 이, 그 얼굴 위에 흙이 도톰이 덮이고 새 쑥 돋아 났겠네."

아! 이 얼마나 정감 있고, 가슴 뭉클한 시(詩) 인가?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 뿐이다.


 - 작성일 : 2002.02.16일

 - 읽은책 : '눈물이란 무엇인가',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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