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프로필

Contact Us

 茶인연

 茶詩民謠

 茶文化史

 茶人

 茶/茶器/茶具/茶田

 茶寺

 茶文獻

 中國茶文化

 中國茶

 中國茶器

 日本茶文化

 日本茶

 日本茶器

 게시판

 새소식

 갤러리

  茶인연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기사를 읽고 (990131)


한동안 잠잠하던 외규장각 약탈 도서 반환에 대한 기사가 며칠동안 신문지 상에 갑자기 다시 오르고 있다. 프랑스측에서 최근 이 문제를 협의할 대표로 국립박물관장, 문화부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한 비중있는 자크 살로와 감사원 최고위원을 선정 했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떤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까? 하는 내용이었다.

프랑스측의 그런 내면에는 우리측에서 이 문제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기된 터라 이 문제를 덮어 놓고는 IMF 상황에 놓여 있지만 어떤 다른 나라보다 투자가치가 있어 보이는 한국의 자본시장을 더이상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것과 더 큰 국익을 위해서도 어떻게든 빨리 한국과의 갈등 불씨를 해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외규장각(外奎章閣)의 강화도 설치는 지리적인 잇점을 고려하여 정조가 세운것으로 조선 후기의 왕위계승 및 왕실의 중요 의식, 절차 등을 기록한 왕실의궤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런 국왕의 어람용 왕실의궤는 보통 관련 관청의 보관본인 부본 의궤와는 종이의 질이나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어 비교도 안되는 가치와 중요성이 있으며, 구한말 서구의 침략으로 약탈당한 일국의 중요문화재가 프랑스에 있으므로 해서 국가의 상징과 근본이 외국에 빼앗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300점 이상의 중요 의궤들을 91년 서울대에서 처음 제기한 이후, 마침내 93년 9월에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미테랑대통령이 반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우리쪽도 고속철도 사업권으로 화답을 하면서 우리는 이제 당연히 돌아 오겠구나 했는데, 프랑스측의 반대여론과 박물관 직원들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당시 미테랑의 한국 방문시 상직적인 의미로 1권만 가지고 온 것이 전부다.

그후 협상과정에서 프랑스측은 어떻게든 주지않으려고 5년마다 자동으로 연장되는 장기대여 방식과 이 책의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교환하자는 합의에 따라 한국측이 94년과 95년에 책 목록을 프랑스에 제시했으나 미흡하다는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몇년전에 이태진교수님이 지은 「왕조의 유산 -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서」라는 책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그 책이 나의 머리에 각인된 것은 솔직히 내용보다 이런 '반환'의 난항에 직면하면서 학자로써 그동안의 경위를 상세히 정리하고, 혹시 모를 오래 끌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하여 반환의 진정한 의미를 모아 두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어면서 나는 오랜만에 조선의 선비상을 생각하였고, 구한말 부터 이어지고 있는 기록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에 대한 일종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즉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진 '무엇을 기록하여 남긴다.' 라는 선조들의 내면에 있던 소중한 심상의 싹을 새로이 발견한 기쁨이었다.

한동안 책꽂이에 두고선 잊고 있다가 다시 그 책을 꺼내들고 읽으면서 정조대왕의 훌륭한 치적들과 조선후기의 문화부흥이 곳곳에 베어 있고, 특히 요즘 전각에 관심이 있어 사진을 곁들인 정조대왕이 새긴 인장을 보는 것도 즐겁다.


= [시론] 이태진/ 치욕스러운 외규장각 협상 =

1991년 서울대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도서 반환을 요구했다. 서울대가 민족의 자랑스런 유산인 규장각도서를 관리하면서 강화도 외규장각에 있던 도서들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에 의해 대량으로 불타고, 일부가 반출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뒤인 지난 26일, 양국 협상대표가 맞교환 방식에 합의하고 서명을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10년전 규장각 도서 관리책임자로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필자는 이 어처구니없는 종결을 접하면서 분노를 금치 못한다. 민족이 어려웠던 시절에 당한 부당한 굴욕을 씻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치욕을 보태기까지 했으니 망연자실이다. 부당하게 빼앗긴 유산을 되찾아 오자면서 약탈자들의 억지 앞에 우리 것을 다시 내주고 가져오는 맞교환 방식에 합의했다니 누군들 분노치 않겠는가. 어린 아이 장난보다 못한 이런 치욕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은 그냥 책을 가져 간 것이 아니다. 5000여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모두 불태우고 극히 일부만 가져가 저들의 국립도서관에 소장시킨 것이다. 이 만행을 지휘관 로즈제독의 편지에서 확인했기 때문에 반환을 요청했던 것이다. 국제법상으로는 전형적인 전시 약탈행위로 반환요청은 정당하다는 게 국제법 교수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환이 아니라 반드시 반환 형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맞교환은 이런 정당성과 국제정의를 짓밟는 처사일 뿐더러 약탈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결과를 수반하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어린아이도 모를 수 없는 이 사리를 우리 협상대표가 몰랐을 리가 없다. 작년 가을부터 진행된 공개 토론에서도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 방식을 취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프랑스측은 그간 미테랑 대통령의 반환 약속은 ‘교류방식에 의한 영구대여’로 반환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1994년 미테랑 대통령 발언의 표현이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과연 지금 결정된 것과 같은 맞교환을 염두에 두고 그런 표현을 썼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측은 전략도 부실한데다가 서두르는 습성까지 더해 프랑스측의 억지를 꺾지 못하고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만 것 같다. 협상에선 성급한 쪽이 지게 돼 있다. 상대방이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간 교섭에 임한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자기 임기를 염두에 두고 협상을 서둘렀다. 맞교환 원칙도 서두르는 우리 관계자들을 향해 프랑스측이 어깃장놓기로 내놓은 안이었다. 우리측 대표인 한상진 교수는 언젠가 2001년말까지는 외규장각 도서문제를 결말짓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는 미테랑 발언의 진의를 물고 늘어지는 대신 국내에 없는 어람용 유일본을 우선적으로 교환받는 것을 성과로 내세워 맞교환방식의 부당성을 희석하는 ‘꾀’를 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 ‘꾀’ 때문에 프랑스측에 걸려들었다.

역사의식과 사명감보다 꾀와 졸속이 앞서서야 어떻게 이 나라의 명예를 지킬 것인가.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의 한 선비는 외규장각을 지키지 못한 것을 자책하여 목숨을 끊었는데, 지금은 치욕을 공적으로 자부하려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 [동아시론] 정옥자/ 도서 맞교환 남는 게 뭐 있나 - 2001/07/31 =

작년 10월 공청회 이후 잠잠하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정부 대표는 상호 대여를 위한 맞교환 방식에 대한 합의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조사작업에 착수 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작년에 구두 합의하였던 것을 공식화한 것일 뿐 달라진 것은 없다. 7월 16일 외교통상부 장관 주재로 열린 외규장각 도서 문제 자문위원회 회의 에서는 정치적 접근보다는 학문적, 문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우선 자료조사부터 진행하자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맞교환을 전제로 한 현장조사를 주장한 위원은 없었다.

이번 회담의 가장 뚜렷한 명분은 유일본을 가져온다는 것이라고 생각된 다. 지난번에는 어람용 의궤(儀軌)만이 논의의 초점이었다. 어람용 의궤 는 왕이 직접 보는 것이어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한 초록(抄錄:요약)인 경우가 많으므로 비어람용 의궤가 자료적 가치는 더 클 수도 있다고 하니 까 이번에는 유일본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에 있는 유일본을 국내의 복본(複本)과 교환한다는 것인데 복본 이란 복사본이 아니다. 국내에 한 권 이상 있는 비어람용 의궤를 지칭하 므로 용어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의궤는 사람이 직접 쓴 필사 본이어서 상호 비교연구가 필요하므로 연구자에게 덜 중요한 의궤란 없다 . 의궤 연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국내에 있는 의궤를 연구하는 데도 앞으로 많은 연구인력과 시간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귀중한 국내 보존 의 궤자료를 내주면서까지 유일본을 가져오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할 학자는 없는 것으로 안다.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프랑스에 알리기 위하여 상호교환 전시를 추진 한다면 우선 파리에 한국 자료관을 만들어 프랑스 국립도서관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의궤부터 끌어내어 전시하게 하는 것이 방법론상 순리이다. 그리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 기록문화의 우수성과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 사실을 알게 하고 나아가 프랑스 지성의 양심에 호소하는 편이 훨씬 간편 한 방법이다.

약탈한 문화재를 국내에 보존하고 있는 멀쩡한 문화재와 교환하기 시작 하면 앞으로 전개될 세계적인 문화재 반환사태 때 무엇을 주고 그 많은 해외문화재를 반환받을 수 있을지 우려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를 자행하며 남의 문화재를 강탈한 이른 바 강대국들의 입지를 앞장서서 강화해 주 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지난번 공청회에서 방청석에 있던 어느 정신과 의사의 지적대로 우리는 강대국에 대한 과대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강대국에 대한 대응일수록 명분과 논리가 강해야 한다. 양국간에 고속전철, 라파엘 항공기 등 이해관계가 생길 때마다 의궤를 흥정거리로 내밀고 있 는 프랑스의 저급한 외교행각과 거기에 휘둘리는 정부의 줏대 없음에 국 민은 식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프랑스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도 유념해야 한다.

독일이 소장하고 있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약탈당한 것이라고 하여 프랑스에서 전시하고 있던 것을 압수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이다. 그러한 단호한 태도는 내 것을 챙기는 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프랑스가 문화국가를 자처한다면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이중잣대는 단호하게 배격하여야 하리라.

우리는 이 문제를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해결해야 한다. 역사의 창으로 보면 영원한 것은 없다. 제국주의라고 영원할 리 없고 오늘의 강대국이 내일의 강대국이라는 보장도 없다. 문화재를 약탈당한 나라는 다수이고 약탈한 국가는 소수이다. 이 일은 차라리 세계질서의 변화와 거기에 조응 하는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편이 온당하다. 후손들이 큰소리치며 떳떳하게 완수할 임무를 남겨둬야지 내 물건을 주고 약탈당한 문화재를 바꾸어 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그들의 발목을 잡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0여 년 전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될 때만 하더라도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환받자는 소박한 희망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어느 사이에 내 물건을 빼 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사태로까지 되었다. 어찌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 는지 오직 안타까울 뿐이다.


 - 작성일 : 1999.01.31일


 '茶인연'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