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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우리 (980314)


학창시설 자취방 가까이 있는 골목시장에 주름진 얼굴의 늙으신 할머니가 항상 그자리에 나물과 채소 몇 종류를 갖다가 팔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얼굴은 피부라기 보다는 거북이 등처럼 각질이 선명하고 추운 날씨로 인하여 마치 술을 먹은 것 처럼 울긋불긋하고,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부은 얼굴로 인하여 나의 기억에 더욱 강하게 남겨졌고, 그 뒤 가끔 그곳을 지나치면서 할머니를 볼때 마다 그 분이 좁디좁은 이시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때는 오직 북망산에 갈때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측은하게 여겼다.

또 가끔은 그곳에서 같이 물건을 파는 분들과 웃을 때나 혼자서 과일을 한입베어 물면서 흐뭇해 할때, 지나가는 사람에게 선심을 쓰면서 웃을 때 보면 울타리속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한 인생의 희노애락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런 억압된 울타리는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분의 일상사를 모르는 나에게는 편안함과 불편함과 어려움이 함께 숨쉬고 있는 곳이 그분에게는 넉넉한 공간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하일 일이언이 지은 "인간의 역사"의 선사편에서 새는 정말 자유로운가? 의 물음에 전나무의 열매를 먹는 잣새는 전나무 숲의 포로가 되어 전나무 숲에 갇혀 있다는 글을 보고 막연히 인간도 그런 울타리를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그 할머니와 대비하여 나의 머리에 떠올렸다. 그분의 넉넉한 공간은 잊어버리고 말이다.

근래들어 회사에 출퇴근하면서 나는 나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것이 점점 강하게 느끼면서 불만족스럽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가운데 문득 마하일 일리언의 잣새의 울타리와 시장어귀에서 채소를 파시던 할머니에게서 느낀 측은한 울타리가 나에게도 어느덧 견고하게 쳐져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언제 나는 수동적인 환경에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 울타리를 걷어 치울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으로 이궁리 저궁리 하여 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은 불만에 대한 것을 그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 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자유로울지라도 그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다시 울타리가 생길거라는 것을 나는 느끼지 못한 것이다. 즉, 물리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껴 외국에 가더라도 거기도 마찬가지로 또 생기는 새로운 울타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같은 이치를 뒤늦게 어럼풋이 느끼게 되었다.

바로 그 울타리란 내 자신이 이것이 불편하여 아니면 나에겐 안맞다고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 만든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장소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 곳에서 울타리 라는 것은 없고 또 느끼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불만으로 가지므로 인해 울타리가 설정되었고, 내 자신이 그 울타리를 탈출하기 위하여 어떤 방도를 지금껏 궁리해 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학창시절 미하일 일리언의 "인간의 역사"를 읽고, 함축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라고 공감한 내용들에 어딘가 모를 허전함이 들었고, 그 허전함은 바로 지나치게 한편으로 치우친 합리적, 이성적인 면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감성이 없다는 사실을 보지 못함이었다.

즉,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일체유심조!

언어적인 유희로서 아니라 문득 느껴지는 진리의 희미한 빛을 약간 느낀 것 뿐, 아직 찾을 길이 구만리 같은 나에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작성일 : 1998.03.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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